마지막 우상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우상을 무너뜨린 자리에 가장 강력한 우상이 남았다
. 바로 나 자신이다.

신을 죽인 인간이 그 자리에 무엇을 세웠는지 아십니까.

신을 죽인 인간이 그 자리에 무엇을 세웠는지 아십니까.

우상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금으로 만든 조각상이나 맹목적 숭배의 대상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우상을 하나씩 무너뜨려온 끝에 도달한 자리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은밀한 우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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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의 황혼, 그리고 우상의 황혼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는 16시간이 넘는 대작입니다. 그 마지막 부분인 '신들의 황혼'은 옛 신들이 지배하던 시대의 종말을 그립니다. 위선과 자기기만의 권력이 무너지고, 사랑과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향한 이야기입니다.

바그너에 깊이 매료되었던 니체는 이 제목을 패러디해 《우상의 황혼》을 씁니다. 부제는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 법'. 그 망치로 니체가 두들겨 부순 것은 수천 년간 인간을 지배해온 도덕과 종교의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학문》에서 그 유명한 선언을 내놓습니다.

신은 죽었다.

절대적 진리를 강요하는 신은 죽었으니, 이제 인간 스스로 자기 삶의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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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을 죽인 자리에 들어선 것

니체의 초인 사상은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낡은 도덕에 얽매이지 말고 인간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라는, 인간의 창조적 가능성에 대한 강렬한 긍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끔찍한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모든 우상이 사라진 자리에 가장 강력한 무언가가 남았습니다. 우상을 섬기다가 우상을 죽인 인간이, 이번에는 '주체, 실존, 자유'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스스로 우상의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그 유명한 명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인간 주체성의 선언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달리 읽으면, 인간에게 신적 권위의 면류관을 씌워주는 대관식 선언이기도 합니다.

어떤 객관적 규범도, 어떤 보편적 가치도 없다는 선언. 그것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객관적 우상보다 훨씬 더 무서운 주관적 우상의 동굴 속으로 인간을 밀어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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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우상이라는 가장 정교한 함정

자기애가 이념이 되고, 우리끼리의 동질감이 신념의 도그마로 굳어질 때, 그 나르시시즘은 개인과 공동체의 마지막 우상으로 등극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섬기고, 자기가 자기를 숭배하는 모순. 우상이 노예가 되고 노예가 우상이 되는 아이러니. 이것이 자기 우상의 정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경고했습니다. "탐욕은 곧 우상숭배다." 재물이 경제활동의 경계를 넘어 삶 전체의 토대가 될 때 물신(物神)이 등장합니다.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극단에 이르면 결국 같은 자리에 도달합니다. 돈과 재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기숭배, 그것이 물신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이 자기 우상은 무신론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 이 글에서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에 내 삶을 맞추려 애쓰면 신앙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바에 하나님의 능력을 동원하려 하면, 그것은 자기 우상 숭배입니다. 종교의 언어를 빌린 자기숭배. 가장 경건한 얼굴을 한 가장 은밀한 우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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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우상의 황혼

불교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나도 없고, 마음도 없고, 몸도 없고, 도마저도 없다.

예수는 말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라오라."

동서양의 깊은 사유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지막 우상으로부터의 해방. 자기를 부인하는 것, 자기를 내려놓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라고.

신학자 몰트만은 말했습니다. "오직 올바른 크리스천만이 진정한 우상 파괴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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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장 집착하는 것, 가장 방어하는 것, 가장 상처받는 것은 대부분 '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의견, 내 체면, 내 이익, 내 방식.

바그너의 신들이 황혼을 맞이했듯, 니체의 우상들이 망치에 무너졌듯,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우상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그 우상의 얼굴은 놀랍도록 나를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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